비 내린 저녁, 혼자 걷는 한강공원의 낭만
어제부터 이어지는 봄비가 오늘도 내리고 있다.
하루종일 집에서 지내다가 그래도 나와의 약속
하루에 걷기운동은 꼭 지켜내자..그래서 오늘도 산책겸 걷기에 실행을 옮겼다.
5월의 중순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공기는 차갑고 하늘은 잿빛이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이런 날씨가 싫지 않다.
퇴근길, 우산을 챙겨 들고 늦은 저녁이 내려앉는 시간에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비 오는 날의 한강은 다른 계절과도, 다른 날의 풍경과도 다르다.
비가 그친 듯 또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흐린 저녁.
젖은 자전거 도로 위로 가로등 불빛이 번지듯 스며든다.
나무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듯 떨어지고, 발밑으로는 고요한 웅덩이가 내 발자국을 따라 흔들린다.
사람도 거의 없어 더 고요한 한강.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과 나뭇가지 소리, 멀리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그리고 내 발걸음 소리만이 묵묵히 이어진다.
이런 날엔 괜히 감성에 젖는다.
따뜻한 봄볕 아래 활짝 웃던 사람들 대신, 오늘의 한강은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낭만적이다.
가로등 아래 벤치에 잠시 앉아본다.
내 옆엔 아무도 없지만,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 속 주인공이 된 기분.
우산을 탁 덮은 채로 이어폰에서 흐르는 잔잔한 음악, 그리고 눈앞으로 흐르는 한강의 잔물결.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소음과 피로가 멀게 느껴진다.
물론 이런 비 오는 날 산책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신발은 젖고, 옷깃은 축축해지고, 차가운 공기에 몸이 움츠러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날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분명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우산 속 작은 세상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들.
요즘은 바쁘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산다.
맑은 날씨, 꽃 피는 봄날, 그리고 비 내리는 고요한 저녁까지. 하지만 이렇게 한강을 천천히 걸으며 비 오는 공원의 분위기를 만끽하다 보면, 괜히 마음이 말랑해지고, 지나간 기억 하나둘이 떠오르며 사색에 잠기게 된다.
오늘 한강은 ‘누구와 함께’가 아닌 ‘나 자신과 함께’한 산책이었다.
비 내린 공원, 적막한 풍경, 그리고 잊고 지냈던 나의 감정들. 때론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밤이다.
비가 그친 한강의 밤하늘 아래,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하지만 오늘의 이 조용한 낭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일은 다시 맑은 날씨가 찾아오겠지. 그래도 오늘의 이 흐린 저녁,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