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전주의 거리는 독립영화와 세계 영화 애호가들의 열기로 가득 찹니다.
2025년, 제26회를 맞이하는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도 어김없이 그 뜨거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올해의 슬로건은 다소 도발적이고도 철학적인 문장, "우리는 늘 선을 넘지"입니다.
이 문장을 두고 많은 해석이 오가고 있지만, 영화제의 기조를 꿰뚫는 핵심은 ‘경계의 재정의’와 ‘영화 언어의 확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슬로건이 말하는 ‘선을 넘지’는 단순한 법이나 도덕의 선을 지키자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존의 장르적, 미학적, 사회적 경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며, 그 한계를 시험하는 모든 영화적 시도들을 포용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그동안 ‘디지털 삼인삼색’, ‘전주시네마프로젝트’ 등 다양한 기획으로 실험적인 감독들과 함께하며, 영화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왔습니다.
2025년에도 그 정신은 그대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올해 영화제의 개막작은 루마니아 출신 감독 "라두 주데(Radu Jude)"의 신작 "<콘티넨탈 ‘25>"입니다.
전편이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그 형식부터가 실험적이며,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도전이 돋보입니다.
내용 또한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현대 사회의 도덕성과 기술문명을 교차시킨 메시지를 던집니다.
폐막작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김옥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기계의 나라에서>"는 한국에서 노동하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시(詩)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의미를 되묻습니다.
한국경쟁 부문에서는 특히 두 가지 키워드가 눈에 띕니다.
바로 ‘LGBTQ’와 ‘유사가족, 여성 연대’입니다. 박준호 감독의 "<3670>"은 탈북 게이 청년의 삶을 다룬 멜로영화로, 사회적 소수자의 내면과 정체성을 세심하게 조명합니다.
또 성스러운 감독의 "<여름의 카메라>"는 여고생 여름이 겪는 내적 성장과 주변 여성들과의 연대를 그리며, 가족이라는 틀을 넘어선 관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들 작품은 단순한 영화 이상의 메시지를 품고 있으며,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젠더와 연대의 이슈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특별전 "다시, 민주주의로"는 특히 눈여겨볼 기획입니다.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시대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탐색합니다.
지금 이 시대, 특히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영화제는 다시금 기본으로 돌아가 민주주의를 예술로 환기하고 있습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전통적인 경계에서 한발 더 나아간 다양한 해외 초청작들과 국내외 게스트를 통해 국제 영화제다운 위상을 다시금 드러냈습니다.
특히, 몬테레이 국제영화제 등과의 교류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미주 지역까지 영화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관객들에게 단순한 관람을 넘어선 ‘참여’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문장은 단지 도발적인 문구가 아닌, 전주국제영화제가 세상과 예술을 바라보는 진지한 태도 그 자체입니다. 영화의 경계, 인간의 경계, 사회의 경계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과감히 넘나드는 이 실험적 여정에 함께 동참해보는 건 어떨까요?
2025년 봄, 전주에서 또 한 번의 ‘영화의 봄’이 피어납니다.
2025. 04. 30. (수) ~ 2025. 05. 09. (금)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 The 26th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 The 26th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www.jeonjufe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