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9617598002258632, DIRECT, f08c47fec0942fa0 google-site-verification=38Fw_HGxIAyqlRxWcfdqgvqmDpA_8j85bd7gwXySG-Y 윤동주와 송몽규 등 1940년대 일본 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1000여 명의 수형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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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송몽규 등 1940년대 일본 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1000여 명의 수형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공개

by 나라신유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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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엄청난 애국자는 아닙니다

출퇴근을 하며서 유튜브에서 죄수복 대신 한복입은 독립운동가들...하면서 알고리즘 연관 검색 이런식으로 뜨는걸 볼때마다 독립운동하시는분들이 참 위대해보였습니다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그 찌릿찌릿함에 위대한 독립운동가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생각하네요

내가 그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어땠을까?

 

윤동주·송몽규 등 일본 형무소 수감 독립운동가 명부 공개

일 내무성 작성 치안보고록·치안제외보고록 1000여 명 수형 기록

일본 철공소 등서 일하다 독립운동에 나선 김근도·김두만 등도 포함

 

윤동주와 송몽규 등 1940년대 일본 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1000여 명의 수형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공개됐다. 

국가보훈부는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일본 국립공문서관 자료를 수집해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공개했다.

 

해당 자료는 치안보고록(治安報告控)과 치안제외보고록(除治安報告控) 등 당시 일제 내무성 소속 경찰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문서로, 치안보고록은 치안유지법 위반 수형자, 치안제외보고록은 치안유지법 이외의 법(불경죄, 유언비어 등) 위반 수형자를 기록한 문서이다.

특히, 이 두 문서에는 연도별, 인명별로 1000여 명의 수감 구치소·형무소명, 입소일, 형기(통산일수), 형기 시작·만료일 등의 정보가 치안보고록 122쪽, 치안제외보고록 70쪽에 기록돼 있다.

이 자료는 1940년대 독립운동과 관련해 체포돼 수감된 인물을 망라하는 자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표적으로 1943년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 혐의로 검거됐던 윤동주(1990 독립장), 송몽규(1995 애국장)가 같은 해 12월 6일 교토구치소에 입소해 미결수로 수감된 내용이 치안보고록에 기록돼 있다.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은 1943년 7월 일본 특별고등경찰이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윤동주와 송몽규를 비롯한 조선인 유학생들을 체포한 사건이다.

또한, 일본으로 이주한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재일 한인들이 일제에 저항하다 수감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철공소 등에서 일하다 일제의 민족차별에 맞서 독립운동에 나선 김근도(1995 애족장), 김두만(2003 애족장) 등도 포함돼 있다.

치안제외보고록에는 일제의 통치체제와 일왕을 비판하다가 불경죄로 체포돼 옥고를 치른 유재우(1990 애족장), ‘미국의 비행기가 홋카이도를 대폭격하고 갔다’, ‘이번에 일본도 끝났다’ 등의 시국담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징역 4월을 받은 정혁모(2009 대통령표창)의 수감 기록도 기재돼 있다.

수형제도 연구의 권위자인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 문서는 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 일본의 각 구치소와 형무소에 수감된 사상범 명부로 학술적 가치가 있는 새로운 자료”라고 밝혔다. 

또 “기존 자료에서 확인할 수 없는 일본 내의 수형 사실을 기록하고 있어 1940년 이후부터 일본 패망 때까지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포상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일제강점기 수형 기록은 항일독립운동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 중의 하나이다.

특히, 이 문서는 일본의 중앙행정기관인 내무성에서 작성한 수형기록으로 일본에서 활동했던 한국인들의 독립운동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보훈부는 이번에 발굴한 문서에서 미서훈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다수 확인되는 만큼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을 위한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선열들의 독립운동 흔적을 찾아내어 선양하고 예우하기 위한 독립운동 사료 수집은 국가의 마땅한 책무”라면서 “국외 독립운동 사료를 지속해서 발굴·분석해 독립유공자를 한 분이라도 더 발굴·포상하고, 숭고한 독립 정신을 미래 세대에 계승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문의 : 국가보훈부 보훈예우정책관실 보훈기록관리과(044-202-5775)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독립운동(독립 운동)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고 조국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전개된 다양한 활동과 운동을 말합니다.

이 운동은 한국의 주권을 회복하고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국내외에서 다각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주요 독립운동의 형태

 

의병 운동: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시작된 의병 운동은 한국 전통의 민병 조직이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봉기한 운동입니다. 대표적인 의병장으로는 홍범도, 유인석, 김좌진 등이 있습니다.

해외 독립운동: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중국,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독립운동 단체가 조직되었으며, 대표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되었습니다. 임시정부는 외교적 활동과 더불어 무장 투쟁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의 중추 역할을 했습니다.

3.1 운동: 1919년 3월 1일에 발생한 이 운동은 일본의 무단통치에 반대하고 한국의 독립을 요구한 대규모 민족운동입니다. 전국에서 수백만 명이 참여한 이 운동은 한국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무장 투쟁: 만주와 중국, 그리고 국내에서 무장 독립군을 조직하여 일본군과의 전투를 벌였습니다. 대표적인 전투로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이 있으며, 독립군 지도자로는 김좌진, 이범석, 안중근 등이 있습니다.

문화 운동과 계몽 운동: 식민지 통치하에서 교육과 언론을 통해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의 필요성을 알리는 운동도 전개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다양한 계몽 서적과 신문이 발행되었으며, 민족의식과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도 병행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의미

독립운동은 단순히 군사적 저항에 그치지 않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자주 국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의 표현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며, 이러한 노력은 결국 1945년 해방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역사와 민족적 정체성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은 지금도 존경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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