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골길을 지나다 들판을 바라보며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초록빛 논. 모내기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모들이 벌써 제법 뿌리를 내려 들판에 착 달라붙은 모습이었다.
푸릇푸릇하게 올라온 모들은 이미 논의 주인이 되어, 그 땅의 생명력을 머금고 자라나고 있었다.
style="font-family: 'Nanum Gothic'; color: #333333; text-align: start;">모내기를 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싶다.
어릴적 고무줄 바지에 모심기용 장화를 신고, 허리를 숙이고 줄 맞춰 손으로 심어 나가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날은 햇볕이 무척 따가웠고, 물에 잠긴 논바닥은 발을 뗄 때마다 쭉쭉 따라 붙어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어린 시절, 그저 구경만 해도 힘들 것 같던 그 작업을 어른이 된 지금은 고스란히 추억으로 떠올린다.
논에 심겨진 모들은,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고 어느새 그 논의 주인이 된다.
누군가는 농작물을 키우고, 또 누군가는 시간을 키운다.
나에게는 이 초록의 논이, 시간의 속도를 일깨워주는 커다란 시계 같다.
계절은 여전히 제 속도로 흐르고, 자연은 변함없이 자라는데, 유독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들판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절의 흐름을 보며 시간을 체감하는 게 어쩌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권이 아닐까.
도시에서 시간은 늘 바쁘고 급하게만 흐른다.
바람 한 번에 머리를 날리고, 햇살 한 줄기에 웃음을 지을 여유조차 없는 채로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논에서 자라는 모 한 포기를 바라보는 순간, 나도 그들과 함께 여름을 맞이하고 있는 듯한 마음이 든다.
이제 이 모들은 여름 내내 푸르게 자라,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익어갈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누렇게 물든 들판은 또 다른 풍경이 되어 나를 반길 것이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가고, 그렇게 또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
모내기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모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들판은 묵묵히 계절을 품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조용히 흐르는 시간에 귀를 기울였다.
계절은 말없이 많은 것을 전해주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여름의 초입에서 나 역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