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내가 생각했던 마흔
마흔이 넘으면 책에서 배운 완성된 어른의 모습일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흔살이 넘은 지금 난 아직도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흔이 넘어서도 하고 싶은 걸 못 찾았다면, 어쩐지 ‘나는 좀 뒤처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가고, 어떤 이는 이미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고. 그렇게 하루가 간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문득,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걸 찾았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SNS에서 우연히 색연필로 그린 그림 하나를 보게 되었다.
무척 정갈하고 따뜻한 그림이었다. 뚜렷한 기술이나 기교보다 진심이 담긴 그 그림이 내 마음에 뭔가를 건드렸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별 모양, 나무, 꽃, 강아지 얼굴, 엄마 얼굴까지. 손에 색연필이 닿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복잡함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그림이 주는 울림은 참 특별한 것 같다.
색이 하나씩 채워질 때의 차분함, 완성된 그림을 보며 스스로에게 ‘잘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기쁨. 물감이 번지는 모양에도, 연필 끝에서 맺히는 선 하나에도 마음이 간다.
그건 마치 나도 모르게 눌러왔던 감정들이 조금씩 해소되는 시간 같다.
누군가는 말한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아." 그 말이 참 흔하고 식상하게 들리다가도, 그림을 생각하면 믿고 싶어진다.
꼭 거창한 재능이나 목표가 아니어도 좋다. 그림을 배우고 싶고, 그리고 싶고, 색을 입히고 싶다는 이 간절함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한다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은 것’ 아닐까.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 숫자들이 쌓일수록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나이에 무슨 그림이야’ 싶은 생각도 들고,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생각한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할 수 있을까.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색연필을 들고, 종이를 펼치고, 내가 좋아하는 걸 그려보는 시간. 그건 어쩌면 나 자신에게 주는 가장 진심 어린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나는 조심스레 색연필 세트를 하나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처음부터 잘 그리지 않아도 괜찮다. 비뚤비뚤해도, 서툴러도 좋다.
하고 싶었던 걸 향해 첫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으니까.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해도 괜찮다.
찾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테니까.